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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뒤샹의 마지막 작품과 레디메이드

by 돌돌모아 2024. 2. 25.

뒤샹의 마지막 회화작품 「 너는 나를/나에게 」

마르셸-뒤샹

 

 

1913년 아머리 쇼를 떠들썩하게 만든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번」의 명성은 마르셀 뒤샹이 뉴욕에 도착한 1915년에도 지속되고 있 었다. 언론으로부터 "계단을 내려오는 무한" 혹은 "연철 제련공장 폭발 사건'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이 입체주의 작품은 미국에 아방가 르드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월터 아렌스버그(Waler Arensberg.), 스테타이머 자매, 캐서린 드라이어(Katherine Dreler)와 같은 맨해튼 의 미술 후원자와 수집가들이 뒤샹을 환영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므로 해밀턴 이스터 필드가 피카소에게 장식 패널을 의뢰했던 것처럼 1918년 드라이어가 서재의 책장 위에 걸 프리즈 형태의 긴 그림을 뒤 샹에게 의뢰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뒤샹이 그 제안을 수락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도착할 즈음 뒤샹은 유화 작업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가 1915년부터 제작한 야심작 「그녀의 독신자들에게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1)는 기법 면에서 볼 때 회화가 아니었다. 아렌스버 그가 뒤상에게 임대해 준 좁은 아파트에서 제작된 이 작품은 두 개 의 큰 유리판을 받침대가 지탱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뒤샹은 다채 롭고 흥미로운 방법을 동원하여 이 작업을 수수께끼 같은 도안으 로 채워 넣었는데, 예를 들어 작업이 중단된 동안 쌓인 먼지를 일정 한 지점에 조심스럽게 '고정'시키는가 하면 다양한 모양의 철 조각 과 철사를 부착하기도 했다. 은박을 부착한 후 다시 긁어내 창살 무 늬만 남긴 부분도 있다. 이 작품은 매우 치밀하게 계획됐지만 실제 진행은 간헐적으로 이뤄졌고, 결국 1923년에야 완성될 수 있었다.


1911~1915년에 뒤샹이 남긴 노트를 보면 그가 이 작품의 개념적 윤 곽을 잡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이 노트 들은 『녹색 상자(the Green Box) 』(1934)라는 이름으로 출판됐다. '서문'이라 이름 붙인 노트에서 뒤샹은 기이한 삼단논법을 사용하 여 큰 유리」의 배경이 된 다양한 개념에 일종의 권위를 부여한다. 노트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폭포, (2)점등된 가스등 등이 주어 곤진다면, 우리는 순간적인 정지 상태의 조건들과 상이한 사실들 미의 연쇄 조건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뒤샹이 '노트들을 출판하기 전까지 이 작품의 불가해한 내러티브에 대한 유일한 단서는 길지만 애매한 작품의 제목이었다. '그녀의() 독 신자들에게 발가벗겨진 신부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설명한다기보 다 사실의 진술에 가깝다. '노트들'의 출판은 오히려 이 제목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신부의 옷을 벗기는 일'은 "궁정식 연애의 알레 고리"라든지 "기초 물질을 영혼으로 승화시키는 일종의 연금술적인 정제 과정'이라든지, 아니면 우리가 사차원에 접근하는 길"이라는 등의 해석이 난무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 중 어떤 것도 결정적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다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리얼리즘적인 외 관으로 견고하게 들어앉은 사물들의 냉정한 현실이다. 이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바로 진실 추구와 암묵적인 해석에의 저항의라 는 유리의 두 측면을 결합하는 사진적 속성이다. 왜냐하면 으레 해석 을 포함하는 회화적 구성과 달리 사진은 그런 해석적 텍스트를 포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실을 바로 찍어 낸 사진이 어떠한 사 실에 대한 증거가 되려면 신문의 캡션과 같이 그것을 설명하는 부가 텍스트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